한미약품그룹 임성기 회장이 2일 새벽 향년 80세에 숙환으로 별세했다.임성기 회장은 중앙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서울 동대문에서 '임성기 약국'을 열어 자금을 모아 1973년에는 '임성기 제약'을 설립했고 그 해에 상호를 한미약품으로 바꾼 뒤 지금까지 회사경영에 헌신했다.
더 자세한내용보기>>
한미약품은 매년 매출액의 최대 20%에 이르는 금액을 혁신 신약 개발에 투자하고 있으며, 한미약품이 최근 20여년간 R&D에 투자한 누적 금액은 약 2조원에 달한다.
1940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중앙대 약학과를 졸업한 임 회장은 1967년 서울 동대문에 ‘임성기약국’을 열며 제약 업계에 뛰어들었다. 이후 1973년 ‘더 좋은 약을 우리 손으로 만들자’는 생각으로 한미약품을 창업했다. 조그만 약국에서 시작한 임 회장은 48년간 회사를 이끌며 한미약품을 매출 1조원이 넘는 글로벌 제약사로 키워냈다.
1987년 한국 제약업계 최초로 글로벌 제약기업 로슈에 항생제 제조기술을 수출했으며, 1997년에는 또 다른 글로벌 제약기업 노바티스에 '마이크로에멀젼' 제제 기술을 역대 최고 규모인 6천300만 달러에 기술이전했다. 노바티스와의 계약 성과는 당시 IMF로 고통받던 대한민국에 큰 희망을 주었다.
2000년 의약분업 시행 직후 국내 대부분 기업이 투자를 축소할 때, 임 회장은 과감한 투자를 통해 2000년 이후 제약산업 지형을 바꿔놓았다.
2003년 국내 최초의 개량신약 고혈압치료제 '아모디핀'을 출시해 한국 제약산업의 성장 잠재력을 입증했으며, 2009년에는 국내 최초의 복합신약 고혈압치료제 '아모잘탄'을 기반으로 글로벌 혁신 신약 개발의 초석을 닦았다.
그러다 2010년에는 창사 이래 첫 적자까지 경험했다.이 과정에서 단기 성과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투자자는 물론 회사 내부에서도 R&D 투자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나왔다. 그러나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R&D 투자를 향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2015년에는 한 해 동안 총 7건의 대형 신약 라이선스 계약을 글로벌 제약기업에 잇따라 성사시키며, 한국을 역동적인 제약 국가로 탈바꿈시켰다. 그해 계약을 체결했던 여러 신약이 반환되는 아픔도 겪었지만, 임 회장은 전체 임원 회의에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은 외롭고 힘들지만, 그 길에 창조와 혁신이 있다"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임 회장은 회사의 성과를 임직원들과 함께 나누기도 했다. 2015년 대형 성과를 창출한 이듬해 2천800여명에 이르는 그룹사 전 임직원에게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무상으로 증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송영숙 씨와 아들 임종윤·임종훈 씨, 딸 임주현 씨가 있다. 장례는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른다. 빈소는 미정이다. 발인은 오는 6일 오전이다.유족 측은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한다는 뜻을 밝혔다.